최덕근 영사 피살사건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드는 갖가지 의문들. 그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이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왜 언론은 무리한 예단 보도를 감행하는가. 북한의 보복 살인으로 단정할만한 물증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몰아가는 저의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다.어떤 이는 뿌리깊은 반북 이데올로기의 발로라 얘기한다. 무장간첩이 출현하고 ‘천배 만배
난해와 평이. 멀리 떨어진 채 서로 맞서있는 극점이기에 이 둘을 오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오직 대립 뿐, 상통하는 요소를 발견키 어려운 게 이 둘의 관계인 듯 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대립관계는 외양의 현혹에 이끌린 착시현상일 뿐이다. 시간이 흘러 주위 환경의 빛에 익숙해진 다음이면 난해와 평이가 은밀하게 맞닿아 있는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
어찌보면 시사만화처럼 가장 원초적인 표현 형식도 없을 것이다. 짧되 굵게, 재미있되 가볍지 아니하게 핵심만을 추려 전달하는 시사만화. 그것이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아무 덧칠도 하지 않은 채 홀딱 벗은 알몸뚱이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데 있을 것이다. 화려한 문체, 톡톡 튀는 내용으로 장식한 장광설의 다른 글들 앞에 시사만화가 우뚝 서 있는 이유는 다른 표현
대한민국은 분명 쇼의 천국이다. 대통령이 깜짝쇼를 좋아한대서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을 들러리 삼아 세기적인 쇼를 연출한 실력이니 우리나라를 쇼의 본고장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전두환씨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 그것이 사람들을 현혹하는 쇼와 환락의 천국 라스베이거스라면 그 일당에 대한 밋밋한 판결은 라스베이거스를 둘러싸고 있는 황량한
만사가 짜증나는 계절이다. 장마 뒤끝의 습기에 4부 능선을 향해 줄달음치는 온도계의 횡포가 겹쳐지면서 불쾌지수는 올라가고 몸은 축 늘어진다. 말도 없고 탈도 없이, 그저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픈 심정이지만 세상사는 그런 아량조차도 베풀지 않는다. 한여름 땡볕 만큼이나 뜨거운 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이열치열의 고난도 피서법을 강요하는 게 세상사의 속뜻이라
후안무치가 어떠한 비난에도 개의치 않는 강심장의 생리작용이라면 세계일보와 중앙일보는 강철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들이 강심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비난의 메아리를 불러올 게 뻔한 만화를 배짱 좋게 게재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중앙일보의 ‘왈순아지매’. 그에겐 자화자찬의 백미라는 헌사가 바쳐져야 옳을 거다. 홍석현 사장의 중국 방문에 ‘
외눈박이만이 사는 마을에선 두 눈 똑바로 달린 사람이 바보가 된다는 시정 잡담에 비춰본다면 동아만평은 바보에 속한다. 다른 시사만화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기에 열을 올릴 때 동아만평만은 정치권 가르기에 충실해 왔다. 동아만평은 12일자에서 개원 국회 파행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다. 그 대답은 신한국당과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 시집살이 끝에 배
시사만화에 비친 최근 정국은 난장판이다. 얽힌 실타래마냥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길 없는 이전투구가 계속되는 모양새다. 누구 하나 깨끗할 것 없는, 진흙탕의 전사들이다. 경향신문(‘장도리’, 7일)은 의원 빼가기를 둘러싸고 연일 씨름판을 벌이는 정치판을 두고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정치개혁은 요원하다고. 한국일보(만평, 7일)는 여야의 공방을 벼랑끝 싸움으로
누군가 그랬다. 정치는 합종연횡의 예술이라고. 그것이 과연 예술로까지 찬미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합종연횡의 정치술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힘있는 여당이 힘없는 야당을 상대로 의원 빼가기에 혈안이 돼 있는 최근의 정치 현실은 야당간 연합의 필요조건을 형성해 왔다. 김대중·김종필 두 총재가 회동한 것은 신한국당이 제공한 야당 연합의 필요조건에
마감엔 평가가 따른다. 현상의 원인을 짚어내서 이후의 향방을 전망하기 위해 평가는 필수적이다. 총선 평가는 더더욱 필수적이다. 늘 ‘이변’으로 기록되는 총선사의 이면엔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리하기에 총선 평가는 의무에 가깝다. 시사만화는 총선평가의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주체들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인다. 갖가지 이름으로 등장하는 시사
‘떨이’가 노점상의 전유물은 아닌 모양이다. 시간에 쫓겨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도매금으로 팔아치우는 노점상마냥 시사만화도 정치판 떨이에 나섰다.시사만화가 떨이판에 올린 건 4·11총선에 나선 선량후보들. 시사만화는 이들을 불법·탈법 선거운동의 책임자로 싸잡아 비난하고, 4·11 총선을 쓰레기판에 비유하고 있다. 국민일보(국민만평, 3월16일)는 이번 총선
조선일보의 4·11총선 해석법은 눈여겨 볼만하다. 다른 신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시각이 스며들어 있는 게 조선일보의 시사만화이다. 다른 신문들이 총선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분절적인 사안들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조선일보는 총선의 성격을 부각하는 데 주력해 왔다. 조선일보가 파악한 4·11총선의 성격은 대선 전초전. 대권 창출을 위한 발판 마
병자년 벽두, 이야기 만화 작가이던 고우영씨가 시사만화가로 등장했을 때 세인들은 그의 변신을 기대반 우려반으로 지켜봤었다. 그가 쌓아온 관록과 명성, 그리고 사실에 엄격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는 그라면 규격화된 구성과 구태의연한 발상법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야기 만화와 시사만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맨홀 뚜껑을 열고 낚시줄을 드리우는 짓(중앙 9일, ‘왈순아지매’)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코미디에서라면 모를까, 일상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극적인 모습임에 틀림없다. 볼링공이 핀을 스스로 비껴가는 것도(조선 10일, ‘조선만평’), 장애물 뛰어넘기 선수가 장애물을 피해 달리는 모습(세계 10일, ‘세계희평’)도 요지경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